어느 순간부터 하루를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넷플릭스를 켜지 않는 날이 자연스럽게 늘어났다. 예전에는 특별한 이유가 없어도 습관처럼 앱을 열었고, 무엇을 볼지 고민하는 시간조차 익숙한 일상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굳이 켜지 않아도 하루가 충분히 흘러갔다는 느낌이 든다. 이 글은 넷플릭스를 켜지 않는 날이 많아진 이후에 들게 된 생각들을 정리한 기록이다. 콘텐츠에 대한 흥미가 사라졌다기보다는, 일상 속에서 차지하던 위치가 달라졌다는 변화에 가깝다. 시청하지 않은 시간 속에서 오히려 더 분명해진 감정과 태도를 차분하게 돌아보고자 한다.

당연했던 습관이 사라진 순간
한때 넷플릭스를 켜는 일은 하루의 끝을 알리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집에 돌아와 씻고 나면 자연스럽게 TV를 켜거나 휴대폰을 집어 들었고, 특별히 보고 싶은 드라마가 없어도 화면을 넘기며 시간을 보냈다. 이 과정은 의식적인 선택이라기보다 습관에 가까웠다. 하루 동안 쌓인 피로를 정리하는 방식이었고, 조용한 공간을 채우는 역할도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흐름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집에 돌아온 뒤에도 넷플릭스를 켜지 않은 채로 시간이 흘러갔고, 그렇게 하루가 끝나도 이전처럼 허전함이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처음에는 이 변화가 낯설었다. 무언가 중요한 것을 빼먹은 기분이 들기도 했고, 괜히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날들이 반복되면서, 이 변화가 의도적인 결심이 아니라 지금의 생활 리듬에 맞춰 자연스럽게 생겨난 흐름이라는 점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켜지지 않은 화면이 만들어준 여백
넷플릭스를 켜지 않는 날이 늘어나자 예상하지 못했던 변화들이 함께 찾아왔다. 가장 크게 느껴진 것은 시간의 감각이었다. 드라마를 보지 않는 대신, 그 시간은 생각보다 조용하고 밀도 있게 흘러갔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앉아 있거나, 하루 동안 있었던 일들을 정리하며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 늘어났다. 이전에는 드라마가 대신 채워주던 공백이었지만, 이제는 그 공백을 직접 마주하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반드시 무언가를 소비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감각이 생겼다. 콘텐츠 없이도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의외로 편안하게 다가왔다. 넷플릭스를 보지 않는다는 선택은 단절이 아니라 여백에 가까웠고, 그 여백 속에서 나의 상태를 조금 더 또렷하게 인식할 수 있었다. 드라마는 여전히 선택지로 남아 있었지만, 더 이상 자동으로 실행되는 존재는 아니게 되었다.
거리감이 만들어준 새로운 관계
넷플릭스를 켜지 않는 날이 늘어났다는 사실은 콘텐츠와의 관계가 달라졌음을 보여준다. 이전처럼 일상의 중심에 두지 않게 되었을 뿐, 완전히 멀어진 것은 아니다. 필요할 때 선택할 수 있는 하나의 옵션으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이러한 거리감은 오히려 부담을 줄여주었고, 다시 보고 싶을 때의 감정도 더 분명해지게 만들었다. 항상 켜두지 않아도 된다는 여유 속에서 넷플릭스는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 되었다. 이 변화는 드라마를 덜 좋아하게 되었다기보다는, 나의 일상이 조금 더 단단해졌다는 신호처럼 느껴진다.